요즘은 클릭 한 번이면 인쇄도, 디자인도, 공유도 순식간에 끝나는 시대예요. 디지털의 속도와 편리함은 삶을 확실히 효율적으로 만들어주죠.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지나치는 것들 사이에서, 어딘가 마음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바로 ‘리소프린트(Risograph Printing)’였습니다. 인쇄라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창작 활동으로 바꾸어주는 이 기술은, 무한 복제가 아닌 ‘유일한 감성’을 남기는 데 집중해요. 기계의 오차조차 멋이 되고, 물 잉크의 번짐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세계.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쇄 방식을 경험하면서, 저는 오래된 기술 안에서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그 체험의 과정을 공유하려고 해요.
리소프린트가 무엇인지부터, 직접 체험하며 느낀 매력, 그리고 집에서 소규모로 즐기는 팁까지 담아봤어요. 디지털에 익숙한 일상 속, 아날로그의 감성을 탐험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분명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리소프린트란? 디지털 시대의 감성 복각기
처음 리소프린트를 접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기계가 실수하는 걸 오히려 즐긴다"는 태도였어요. 일반 인쇄에서는 불량이라 여겨질 요소들, 예를 들면 잉크가 삐져나가거나 색이 겹쳐진 자국, 정밀하지 못한 정렬 등이 리소에서는 그 자체로 ‘멋’이자 ‘개성’이 되거든요.
리소프린트는 일본의 RISO사에서 만든 디지털 공판 인쇄기로, 일반 프린터나 오프셋 인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요. 실크스크린처럼 색을 레이어별로 분리해서, 기계가 하나하나 찍어내는 방식이에요. 잉크도 특수한 ‘쌀기름 기반’ 잉크를 써서 종이에 스며드는 질감이 살아 있고, 한 장 한 장이 전부 미묘하게 달라요. 그래서 같은 도안을 출력해도 매번 새로운 감성이 담기죠.
저는 리소프린트를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아 예약하고 방문했어요. 입구부터 독특한 색감의 포스터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아날로그 특유의 잉크 냄새가 은근히 설레게 하더라고요. 담당 작가님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직접 출력해볼 수 있도록 도안을 준비했는데, 처음 보는 인쇄 방식이라 그런지 작업 하나하나가 신기했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색을 한 번에 뽑는 게 아니라 ‘한 색씩’ 뽑는다는 점이에요. 빨강, 파랑, 노랑… 각각의 컬러 드럼을 갈아끼우며 도안을 출력하고, 그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어긋남이나 겹침이 생기죠. 그 불완전함이 리소만의 정체성이 되고, 결과적으로 손맛과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나요.
리소프린트 체험기: 한 장의 포스터에 담긴 손맛
제가 체험한 곳에서는 사전에 PDF 파일로 도안을 제출하고, 현장에서 컬러 조합을 직접 고를 수 있었어요. 저는 총 2가지 컬러를 선택했는데, 일반적인 CMYK 조합이 아닌 ‘리소 전용 잉크 색상표’를 참고해야 했어요. 형광핑크, 틸그린, 메탈릭골드 등 일반 인쇄에선 보기 힘든 색감들이 많아서 고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색을 정한 뒤, 기계에 도안을 넣고 한 장 한 장 인쇄가 시작되는데요. 소리가 너무 독특했어요. 디지털 프린터의 ‘위잉—’ 하는 무미건조한 소리와는 달리, 이건 뭔가 기계가 숨 쉬는 듯한 ‘두둑, 두둑’하는 리듬감이 있었어요. 마치 오래된 타자기처럼요.
처음 빨강 잉크로 한 번 찍고, 말린 후 파랑 잉크로 다시 한 번 겹쳐 찍었어요. 말리는 시간도 직접 조절해야 하고, 출력 순서도 정해줘야 하니 손이 많이 가요. 그렇지만 그만큼 애정도 생기고, 완성된 작품엔 일종의 ‘작가 정신’까지 담긴 느낌이었어요. 같은 도안을 출력했는데도 매번 다르게 나와서, 그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죠.
그리고 한 장 한 장 말려가며 완성된 포스터를 펼쳐보는데, 진심으로 ‘이거 내가 만들었어?’라는 뿌듯함이 들었어요. 잉크 번짐, 색 겹침, 살짝 어긋난 테두리—all okay. 이 모든 게 리소프린트의 미학이에요. 상업용 인쇄에선 절대 허용되지 않는 이런 ‘결함’이, 리소에서는 오히려 따뜻함이자 창작의 자국으로 남죠.
그날 출력한 포스터는 방에 걸어두고 매일 보고 있어요. 손으로 만든 것이 주는 감성, 아날로그 감성의 물성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집에서도 가능할까? 입문자를 위한 리소프린트 취미 팁
“리소프린트를 집에서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정답은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다’예요. 실제 리소 인쇄기를 구비하기는 매우 어렵고 가격도 높지만, 리소풍 스타일의 디자인을 만들어 출력하거나, 오프라인 스튜디오와 협업해 ‘리소 감성’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첫걸음으로 추천하는 건, 디지털로 리소풍 도안 디자인을 해보기예요. 포토샵이나 프로크리에이트 앱에서 그레인 필터나 텍스처 브러시를 이용해 리소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고, 두 가지 색상을 분리해 각각 흑백으로 저장하면 스튜디오 인쇄에 적합한 파일이 돼요.
그리고 인쇄 체험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공방들도 많아요. 서울,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마다 리소프린트 스튜디오가 있으니, 사전 예약하고 방문하면 직접 체험하거나 워크숍을 수강할 수 있어요. 최근엔 ‘리소 프린팅 키트’를 제공하는 클래스도 있어서, 간접적으로나마 아날로그 감성을 즐길 수 있죠.
무엇보다 리소는 창작의 진입 장벽이 낮아요. 꼭 예술 전공자가 아니어도, 단순한 도형이나 낙서, 손글씨만으로도 멋진 결과물이 나오거든요. 취미로 하기에 부담 없고, 나만의 굿즈(포스터, 엽서, 북클릿 등)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작업물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SNS에서 #risograph 해시태그로 다양한 작가들과 소통하는 것도 추천드려요. 창작자들 간에 인쇄 과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실수(?)를 즐기며 웃는 그 분위기, 정말 훈훈하고 유쾌하거든요.
에필로그: 실수가 예술이 되는 세계
리소프린트를 처음 체험했을 땐 ‘이걸로 과연 멋진 걸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은, 디지털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과 손맛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 취미를 통해 저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어요. 오히려 불완전한 결과물이 더 나를 닮았고, 그래서 더 소중했죠.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흘러도 괜찮다고, 찰나의 감정이라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 리소프린트.
당신도 어느 날, 한 장의 종이에 아날로그의 따뜻함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